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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의 지명유래 탐방 안양의 지명유래 탐방
등록일 2013-10-29
안양의 지명유래 탐방
안녕하세요! 리포터 신소연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사는 지역의 이름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부모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지으실 때 좋은 뜻을 담아 지어주듯이 우리가 사는 지역과 동네의 이름에도 깊은 뜻이담겨 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지명 하나에는 한 시대의 역사와 풍속, 생활 습관까지 담겨 있다고 합니다.자, 그래서 오늘은 우리 안양시의 지명에 얽힌 이야기와 곳곳에 숨어 있는 아주 재밌는 이야기들을 함께 하실 텐데요. 먼저, 안양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부터 알아볼까요?
안양이란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서기 900년경 궁예의 부하였던 왕건이, 금주와 과주지역을 정벌하기 위해서 나섰는데요. 이곳 안양사 부근을 지날 때, 산에 오색구름이 가득 피어올라 이곳이 영험한 곳이라 생각하던 중 능정이라는 스님을 만나 ‘안양사’를 창건했다고합니다. 안양사의 창건과 안양이란 이름은 이렇게 신비롭게 시작됐는데요. ‘안양’이란 불교에서 마음을편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하는 극락정토를 말하는 불교용어라고 합니다. 또한, 모든 일이 원만하고 만족스러우며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이 없는 상상 속의 낙원을 뜻한다고 하네요. 따라서 안양사를 창건할 당시, 고려 태조 왕건과 능정스님은 내 고장 안양이 즐거운 낙원의 세계가 되길 간절히 염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명의 유래를 증명이라도 해 주듯 지난 2010년 8월, 통일신라시대 중초사지로 알려진 유유산업 부지가 고려 시대에는 안양사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안양사 명문와편이 실제 1100년 만에 발견돼 큰 화제가된 바가 있습니다. 안양사는 "동국여지승람" 금천불우조에 그 존재가 자세히 기록돼 있으나, 그동안 위치를 확인 할 수가 없었는데요. 이번 조사를 통해 안양사가 그 실체를 드러내, 우리 시의 역사적 정체성을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인터뷰) 김지석 주무관
Q/ 명문와편 발견이 주는 의미는?
많은 도시가 자기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정확한 위치나 유래가 밝혀진 사례가 매우 없어요. 그런 측면에 있어서 안양시 역사성이라든가 정체성 이런 걸 밝혀준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겠죠.
조사된 안양사 명문와편은 모두 7점으로, 글씨 크기는 7cm이며, 3~4cm 간격으로 3줄의 안양사 명문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굴로 인해 밝혀진 안양사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건물이 배치돼 있었는데요. 순서는 사찰로 진입하는 중문지에서 탑지, 부처님을 모시는 금당지, 학습 공간인 강당지, 그리고 숙소 개념인 승방지가 연결돼 있고, 중문지 좌. 우로 금당지와 연결되는 복도와 같은 회랑이 확인됐습니다.
우리 시 이렇게 큰 역사가 숨어 있다고 하니 정말 가슴이 뿌듯해지는데요. 오늘날 우리 시가 건강한 시민,따뜻한 안양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가 상상 속의 낙원을 뜻하는 지명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시의 지명유래 탐방을 함께하셨는데요. 지금부터는 안양사와 관련된 문화재들을 함께 살펴보실까요?
안양시 예술 공원은 안양유원지로 더 알려졌죠.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주변의 전통사찰 및 문화재와 조화를 이뤄 수도권의 휴양지로 각광 받고 있기도 합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유유부지 안에 보물 제4호로 지정된 중초사지당간지주와 3층 석탑이 눈길을 끕니다.
당간지주란 높은 당간을 세울 때 당간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시설인데요. 당간지주가 통일신라시대인 중초사 때의 작품이라면 삼층석탑은 고려 시대인 안양사 시절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김상수(72) 석수동
Q/ 안양시 문화재를 직접 보니까 어떤지?
삼성산에 일주일에 2~3회 오는데 올 때마다 안양사를 들려보면 천년고찰로써 유서 깊고 공기도 좋고 느낀 바가 많습니다. 안양시민으로서 이런 유래 깊은 사찰을 가지고 있다는 게 자부와 긍지를 느낍니다.
길을 따라 500m쯤 올라가니 전각 속에 바위가 하나 서 있었는데요. 바위 표면에는 한 동자승이 종치는 모습을 담은 부조가 생생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1980년 6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된 마애종인데요. 종을 치려는 동승의 움직임과 발까지 내려온 법의 등 조각솜씨가 굉장히 섬세하고 사실적이죠? 마애종으로는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데다가 사실적이고 섬세한 조각기법으로 더욱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예술 공원 내에 있는 안양사의 귀부와 부도는 모두 안양사와 관련한 문화유산으로 안양의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안양의 지명유래 근원을 찾아보고 관련된 문화유산도 함께 살펴봤는데요. 안양의 지명유래의 근원지이자,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건립된 안양사지, 후세까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문화와 역사의 공간으로 가꿔가야겠습니다. 우리 안양, 우리의 문화유산, 우리가 지켜가야겠죠!
안녕하세요! 리포터 신소연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사는 지역의 이름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부모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지으실 때 좋은 뜻을 담아 지어주듯이 우리가 사는 지역과 동네의 이름에도 깊은 뜻이담겨 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지명 하나에는 한 시대의 역사와 풍속, 생활 습관까지 담겨 있다고 합니다.자, 그래서 오늘은 우리 안양시의 지명에 얽힌 이야기와 곳곳에 숨어 있는 아주 재밌는 이야기들을 함께 하실 텐데요. 먼저, 안양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부터 알아볼까요?
안양이란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서기 900년경 궁예의 부하였던 왕건이, 금주와 과주지역을 정벌하기 위해서 나섰는데요. 이곳 안양사 부근을 지날 때, 산에 오색구름이 가득 피어올라 이곳이 영험한 곳이라 생각하던 중 능정이라는 스님을 만나 ‘안양사’를 창건했다고합니다. 안양사의 창건과 안양이란 이름은 이렇게 신비롭게 시작됐는데요. ‘안양’이란 불교에서 마음을편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하는 극락정토를 말하는 불교용어라고 합니다. 또한, 모든 일이 원만하고 만족스러우며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이 없는 상상 속의 낙원을 뜻한다고 하네요. 따라서 안양사를 창건할 당시, 고려 태조 왕건과 능정스님은 내 고장 안양이 즐거운 낙원의 세계가 되길 간절히 염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명의 유래를 증명이라도 해 주듯 지난 2010년 8월, 통일신라시대 중초사지로 알려진 유유산업 부지가 고려 시대에는 안양사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안양사 명문와편이 실제 1100년 만에 발견돼 큰 화제가된 바가 있습니다. 안양사는 "동국여지승람" 금천불우조에 그 존재가 자세히 기록돼 있으나, 그동안 위치를 확인 할 수가 없었는데요. 이번 조사를 통해 안양사가 그 실체를 드러내, 우리 시의 역사적 정체성을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인터뷰) 김지석 주무관
Q/ 명문와편 발견이 주는 의미는?
많은 도시가 자기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정확한 위치나 유래가 밝혀진 사례가 매우 없어요. 그런 측면에 있어서 안양시 역사성이라든가 정체성 이런 걸 밝혀준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겠죠.
조사된 안양사 명문와편은 모두 7점으로, 글씨 크기는 7cm이며, 3~4cm 간격으로 3줄의 안양사 명문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굴로 인해 밝혀진 안양사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건물이 배치돼 있었는데요. 순서는 사찰로 진입하는 중문지에서 탑지, 부처님을 모시는 금당지, 학습 공간인 강당지, 그리고 숙소 개념인 승방지가 연결돼 있고, 중문지 좌. 우로 금당지와 연결되는 복도와 같은 회랑이 확인됐습니다.
우리 시 이렇게 큰 역사가 숨어 있다고 하니 정말 가슴이 뿌듯해지는데요. 오늘날 우리 시가 건강한 시민,따뜻한 안양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가 상상 속의 낙원을 뜻하는 지명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시의 지명유래 탐방을 함께하셨는데요. 지금부터는 안양사와 관련된 문화재들을 함께 살펴보실까요?
안양시 예술 공원은 안양유원지로 더 알려졌죠.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주변의 전통사찰 및 문화재와 조화를 이뤄 수도권의 휴양지로 각광 받고 있기도 합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유유부지 안에 보물 제4호로 지정된 중초사지당간지주와 3층 석탑이 눈길을 끕니다.
당간지주란 높은 당간을 세울 때 당간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시설인데요. 당간지주가 통일신라시대인 중초사 때의 작품이라면 삼층석탑은 고려 시대인 안양사 시절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김상수(72) 석수동
Q/ 안양시 문화재를 직접 보니까 어떤지?
삼성산에 일주일에 2~3회 오는데 올 때마다 안양사를 들려보면 천년고찰로써 유서 깊고 공기도 좋고 느낀 바가 많습니다. 안양시민으로서 이런 유래 깊은 사찰을 가지고 있다는 게 자부와 긍지를 느낍니다.
길을 따라 500m쯤 올라가니 전각 속에 바위가 하나 서 있었는데요. 바위 표면에는 한 동자승이 종치는 모습을 담은 부조가 생생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1980년 6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된 마애종인데요. 종을 치려는 동승의 움직임과 발까지 내려온 법의 등 조각솜씨가 굉장히 섬세하고 사실적이죠? 마애종으로는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데다가 사실적이고 섬세한 조각기법으로 더욱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예술 공원 내에 있는 안양사의 귀부와 부도는 모두 안양사와 관련한 문화유산으로 안양의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안양의 지명유래 근원을 찾아보고 관련된 문화유산도 함께 살펴봤는데요. 안양의 지명유래의 근원지이자,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건립된 안양사지, 후세까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문화와 역사의 공간으로 가꿔가야겠습니다. 우리 안양, 우리의 문화유산, 우리가 지켜가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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